달아실 달아실출판사 달아실 작가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

정재분

저자소개
대구 출생. 시집으로 『그대를 듣는다』, 『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과 산문집 『침묵을 엿듣다』, 산문집 『푸른 별의 조연들』을 출간하였다.
그는 자기 존재 탐구의 일환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언어에 앞서는 본질을 궁구했다. 그의 질료는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의도치 않게 세 권의 제목에 들어간 ‘듣는’(다) 자세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아이와의 조우에 이른다.
작품
장미와 여우가 얘기를 나눌 때 그것을 받아 적는 여자
― 정재분論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착란을 통해 견자가 된다는 랭보의 말을 전하자 장미와 여우가 나누는 말을 받아 적고 있는 중이란다 마젠타 난쟁이 물총새와 돌고래와 고양이와 늑대 그리고 올빼미와 사자와 호랑이 푸른 별의 오래된 조연들의 말을 받아 적고 있는 중이란다 언어 바깥이고 언어보다 먼저인 불립문자, 언어의 고고학을 탐구하는 중이란다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이 나도록 눈이 아파오도록 그것들을 응시하고 있는 중이란다 어느 순간 감각의 착란이 오면 피아의 경계가 직관과 주관의 단단했던 경계가 흐려지는 법이란다 마침내 물렁해진 것들을 반죽하고 있는 여자가 내게 물었다 혹시 장미와 여우가 나누고 있는 얘기가 들리느냐고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만 가보란다 땅거미가 내려오고 있으니 잘 살펴 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