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시·에세이

푸른 별의 조연들

  • 저자 : 정재분
  • 출판사 : 달아실출판사
  • 발행일 : 2022년 07월 30일
  • 페이지 : 192면
  • ISBN : 979-11-91668-46-9 (03810)
  • 정가 : 13,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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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바깥의 세계에 대한 응시로 투사된 언어의 세계
― 정재분 시인의 산문집 『푸른 별의 조연들』


2005년 계간 『시안』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재분 시인이 두 번째 산문집 『푸른 별의 조연들』을 펴냈다.

이번 산문집은 정재분 시인이 그동안 신문이나 문예지에 발표했던 산문들을 한 데 묶은 것이다.

이번 산문집에 대해 정재분 시인은 이렇게 자평한다.

“문예지에 발표한 글을 추려서 묶고 들여다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현상과 보통은 잊고 지내는 주변부의 존재를 망라한 실존에 관한 관심이 문장을 견인하고 있었다. thing에 속하는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는 다른 종(種)과도 연계된다. 그것은 장미와 여우가 나누는 인사말이요 ‘있음’에 대한 고고학이다. 현상과 실존에 말을 거는 언어 바깥이며, 언어보다 먼저인 무엇이다.”

“의미가 축조한 관념의 세계는 인간을 틀 잡는다. 틀에서 성장한 자의식이 제 모태인 의미를 낯설어한다. 그것에의 순응은 무엇이며 의아심은 무엇인가? 골똘해진 자의식이 외출을 서두른다. 언어와 문자에 포섭당하지 않는 바깥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어와 문자, 그리고 수사법을 수단으로 삼는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가 되어주는 그것은 아침이슬 같은 직관에서 실을 잣는다. 옷감을 짜고 날개 없이도 창공을 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고 싶어 하는 일종의 크레파스다.”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그것은 수사학과 상징, 전설과 신화 그리고 불립문자이다. 더하여 기호와 그림자로 드러나는 어법은 너머의 세계를 홀로그램으로 얼비친다. 물질의 현현인 things의 본질은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이념과 이해의 눈으로 수렴된다. 들음으로써 받아적을 수 있었던 문장은 혼잣말을 사랑했다. 어릴 적 처마 밑에서 빛과 그림자가 대련하는 앞마당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린 동공에 맺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피사체가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공기의 방식을 선호하는, ‘있음’의 세계를 항해하는 하얀 쪽배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이번 산문집은 3부-<1부. 침묵으로 말하는>, <2부. 은유로 말하는>, <3부. 푸른 별의 조연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1부는 사물에 관한 이야기, 2부는 사람(의 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3부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사물’과 ‘사람(의 몸)’과 ‘동물’은 시인이 하고자 하는 얘기의 수단과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시인이 하고 싶은 얘기는 오히려 그 방편 너머 행간 너머에 있다.

그동안 두 권의 시집-『그대를 듣는다』, 『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을 통해 부조리하고 불완전한 세계를 “응시와 투사”로 보여주었던 시인은 이번 산문집에서도 집요하게 이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응시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투사해내고 있다. 그렇게 시인이 투사해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듣고 보고 만지고 그래서 너무나 익숙했던 사물들, 이름들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생기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끝에 다다르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비의(秘意), 삶의 진경(眞景)이 펼쳐질 것이다.

정재분 시인의 이번 산문집은 어쩌면 읽기에 불편할 수도 있다. 익숙한 문장에서 조금-어쩌면 조금보다 더 조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시인의 의도된 ‘낯설게 하기’가 아니라 그것이 이 세계를 들여다보는 수단이며 방편인 까닭이다. 그러니 오히려 독자들은 이번 산문집을 통해 그동안 익숙했던 세계에 틈을 내고 균열을 내는 수단과 방편으로써 글쓰기를 배울 수도 있다. 시인이 독자에게 덤으로 주는 선물인 셈이다.

그동안 알고 있던(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세상에 틈을 내고 싶다면, 그리하여 확장된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