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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팝니다 저자 : 조서정
엄마를 팔아 시집 두 채, 산문집 한 채 지었더라 ― 조서정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 2006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낸 조서정 시인이 첫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달아실 刊)를 펴냈다. 이번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는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엄마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엄마를 중심으로 하여 지난 백년 가까이 이어진 조서정 시인의 가계와 내력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조서정 시인은 책 맨 앞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하늘 천자 별 규자, 죽어서도 별이 되어 나를 지켜줄 내 엄마 박천규 여사에게.”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는 또 이렇게 적고 있다. “아버지의 여자였던 엄마를 훔친 죄, 뒤늦게 용서를 구합니다. 사남매의 엄마보다 아버지의 여자였을 때 더 곱게 빛났던 우리 박천규 여사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번 산문집은 조서정 시인과 그 가족의 개인사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지난 백 년 동안 우리네 민초들이 살아낸 미시 근대사를 집약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번 산문집의 편집자이기도 한 박제영 시인은 조서정의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를 “엄마에 관한 알파요 오메가”라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여기 엄마를 파는 여자가 있다. “산골에서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본 한살림 유기농”이요 “웬수 남편 이승 떠나는 날까지 보살핀 의리파”요 “유지 비용도 아주 경제적”인데다가 “무명 시인 딸 하나 덤”으로 얻을 수 있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한정판”이니 서두르라고, 좌판 위에 엄마를 올려놓은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집을 세 채나 갖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 엄마를 팔아 지은 거였다. 엄마의 모진 세월을 한 땀 한 땀 받아 적어서는 『모서리를 접다』와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라는 시집 두 채를 올렸고, 이번에는 엄마의 간난신고와 신파를 팔아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를 떡하니 올린 것이다. 독한 여자라고? 못된 딸이라고? 아니다. 그 여자의 시집과 산문집을 읽다 보면 자연 우리 엄마와 겹쳐지고 마는 것이니, 어느새 같이 눌러앉아서는 웃다가 울다가 슬프다가 아리다가 그예 눈물 콧물 흘리고 마는 것이다. 여기 엄마를 파는 여자가 있다.」 이정록 시인이 『어머니 학교』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지만(그는 『아버지 학교』라는 시집도 내었다),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엄마라는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동문들이다. 내신 성적도 졸업 성적도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큰 말씀, 가장 큰 가르침을 주었던,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은 엄마라는 학교”의 동문들이라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조서정 시인의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우리 모두는 엄마라는 학교의 동문들”이라는 것 아닐까. -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 저자 : 박숙경
참 쉽죠? 절룩이라는 문장의 완성 ― 박숙경 시집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 2015년 『동리목월』 여름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숙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 刊)가 달아실시선 77번으로 나왔다. 박숙경의 두 번째 시집(『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의 해설에서 신상조 문학평론가는 박숙경의 시를 “사색의 서정”이라 정의하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박숙경의 시는 일차적으로 군더더기 없는 ‘절제의 미학’으로 다가온다. 언어를 학대하거나 비틀고 왜곡하는 작금의 전복적 시작(詩作)과 다른 방향의 길을 걷는 시인의 시어는, 숙련된 보석 세공자의 언어처럼 정교하고 치밀하다. (중략) 이미지의 구사가 뛰어난 박숙경의 시는 작은 풍경의 조각들로 곱게 기워진 서정의 조각보이다. 풍경은 시의 내용이자 형식이고, 시어이자 행이고 연이며 시의 근본이다.” 이번 시집의 발문을 쓴 시인 전윤호는 박숙경의 시를 이렇게 얘기한다. “박숙경의 시는 차분하다. 좀처럼 감정이 들뛰지 않는다. 그리고 중요한 장점이 있었다. 그건 사물에게 말을 시킬 줄 안다는 것이다. “박숙경 시인은 시를 시작하는 방법이 경쾌하다. 시작이 반이라고 독자의 관심을 끌려면, 독자가 끝까지 시를 읽으려면, 좋은 시작은 필수인 셈이다. 아마 시상이 떠오를 때 좋은 시작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박숙경 시인은 자신만의 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나무들과 꽃에 관해 시를 쓰는 것이다. 그 안에는 사람들과 시간들이 줄줄이 서 있기도 하지만 모두 그녀의 품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과가 완성되기를 기다린다. 이런 차분함은 박숙경 시인의 큰 미덕이다.” ‘지난 두 시집과 비교했을 때 이번 시집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인지,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주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박숙경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지난 두 시집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시의 중심이 ‘나에서 너와 우리’로 옮겨진 것을 눈치 챌 수 있을 겁니다.” “시집을 준비하면서 하나의 메시지만을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희망입니다. 비록 복잡다단한 세상이지만 쌀알만 한 꿈 하나 지니고 있다면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 말입니다.” 절룩절룩 책 부치고 오는 길 접질렸던 왼발에 무게가 더 실려요 시든 장미 옆으로 유모차가 지나가요 쌍둥이 중 한 아기가 손가락을 빨아요 나의 절룩과 아기의 손가락 사이엔 결핍이라는 말이 있어요 소공원 벤치에 노인 몇 나란히 앉아 폭염보다 더 뜨거운 고독을 뜯어내는 중이에요 고독은 삼각형, 꼭짓점은 무엇이든 끌어당겨요 어디선가 달려온 소낙비 한줄기 넘어지고 절룩이 모여 여름을 견디는 풍경이라고나 할까요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면 절룩을 감추고 하나도 안 아픈 사람처럼 걸어요 아직 꺼내놓을 용기가 내겐 없는 거죠 절룩을 앓기 전엔 누구의 절룩도 보이질 않았어요 나의 절룩을 내가 읽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절룩이라는 문장이 완성된다는 걸 수많은 절룩 속에서 깨닫는 오후예요 화단의 치자꽃이 마지막 향기를 토해요 잠시 절룩을 잊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요 ― 「절룩」 전문 이번 시집의 편집자이기도 한 박제영 시인은 박숙경 시의 장점이 ‘친절의 미학’에 있다며 이렇게 얘기한다. “처음 그가 건네주고 간 원고를 읽었을 때, 화가 밥 로스를 떠올렸다. 티비 프로그램에서 그가 ‘참 쉽죠?’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캔버스에 붓질을 몇 번 하는가 싶으면 정말로 멋진 풍경화가 펼쳐지곤 했었다. 밥 로스의 ‘참 쉽죠?’란 말은 한때 장안에 화제가 되었지만 그 말의 깊이와 속뜻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좋은 시가 그렇다. 읽기에 참 쉽다. 하지만 그렇게 쓰기가 실제로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아는 이 또한 드물었다. 그의 원고를 두어 번 더 읽었을 때, 어느 철학자의 말을 떠올렸다. ‘결핍의 순간이 되었을 때 삶은 명징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시는 결핍의 칼날 위에서 피어나는 문장을 건지는 작업일 텐데 그의 시집이 어쩌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가 얘기하는 ‘절룩이라는 문장의 완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불편한 시집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가끔은 이런 친절한 시집에 기대보는 것도 좋겠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안의 사과 하나 빨갛게 익어갈 테다. -
애완용 고독 저자 : 전윤호
이상하고 수상한 조진을 씨의 웃긴데 슬픈 이야기들 ― 전윤호 우화집 『애완용 고독』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고 있는 시인 전윤호가 첫 우화집 『애완용 고독』(달아실 刊)을 펴냈다. 달아실출판사의 <철학이 있는 우화 시리즈>로서 최승호 시인의 『눈사람 자살 사건』에 이어 두 번째 우화집으로 나왔다. 이번 우화집은 ‘조진을 씨’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27편의 에피소드를 싣고 있다. 우화집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진을 씨는 외계에서 온 이방인인데 그가 지구에 온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애완용으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대신 “슬픔, 가난, 고독, 침묵”을 키우고 있는 조진을 씨는 시인, 작가, 번역가 등으로 위장하여 살고 있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고 수상하지만 마음은 여린 사람쯤으로 생각하는데, 당국에서는 그를 위험인물로 수배 중에 있다. 이런 이상하고 수상한 조진을 씨를 중심으로 한 27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시인 전윤호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것은 지구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그냥 어딘가 존재하는, 어쩌면 지금은 소멸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어느 날 문득 이 별에 떨어진 이방인―이상한 조진을 씨―에 관한 수상한 이야기이다. 조진을 씨는 ‘왜 나는 살아 있는가?’란 의문보다 더 오래 살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기엔 이미 다 살아버렸다. 그럼 이제 조진을 씨는 죽어야 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다른 별로 점프해야 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혹여 슬픔과 고독과 가난을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 조진을 씨를 만나거든 더 이상 무시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마시라. 무작정 피하지 말고 한번 피식 웃고 가던 길 가시라. 그는 단지 가난한 시인일 뿐이니까.”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조진을 씨는 “지구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경계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 슬픔과 고독과 가난을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 별종인”인 셈인데, ‘조진을’이라는 이름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이 결국 지금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을’들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철학이 있는 우화 시리즈>를 기획한 박제영 편집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윤호 시인의 우화집 『애완용 고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점 이하의 인간’ 혹은 ‘잉여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부에서 집계하는 많은 통계에서 소수점 이하를 볼 수 있는데, 정부가 통계를 발표할 때는 편의상 소수점 이하는 절삭해서 발표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언제나 아무렇게나 절삭될 수 있는 잉여의 인간을 전윤호 시인은 ‘조진을 씨’로 명명한 것이다. 분명 공존하는 존재이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그래서 언제든 이 사회에서 삭제될 수 있는 약자들에 대한 질문이다. 우화집을 읽으면서 하냥 웃을 수도 없고 마냥 울 수도 없었던 까닭이고, 누구든 한 번은 꼭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살펴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다. 끝으로 전윤호 시인의 첫 우화집 『애완용 고독』은 우화집이면서 또한 시집이기도 하다. 각 우화마다 동일한 주제로 쓴 시를 함께 싣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원 플러스 원”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