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실 달아실출판사 소설·시·에세이
소설·시·에세이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

  • 저자 : 최보기
  • 출판사 : 달아실출판사
  • 발행일 : 2023년 12월 15일
  • 페이지 : 100면
  • ISBN : 979-11-91668-99-5 (03810)
  • 정가 : 10,000 원

도서구매 사이트

원하시는 사이트를 선택하여 주세요.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기다리다
― 최보기 시집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후 수십 년 동안 홍보 전문가로 활동해온, 스스로 야매 시인이라 칭하는 최보기 작가가 첫 시집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펴냈다. 달아실기획시집 32번으로 나왔다.

홍보 전문가와 메시지 라이터로 수십 년 유명세를 떨쳤지만 최보기는 사실 지난 십수 년 동안 소설, 에세이,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이며 또한 인터넷에서 수만 명의 팔로워(구독자)를 보유한 북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첫 시집을 펴내면서 시의 분야까지 자신의 전문 영역을 넓힌 것이다.

스스로를 “야매 시인”이라 낮추는 그는 이번 시집에서 약력을 “시인 최보기는 1963년 거금도에서 태어났다.”라는 한 줄로 적었고, <시인의 말>은 “그가, 시詩를 가리켰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라는 두 줄로 끝냈다. 그러니 그가 과연 어떤 시인인지, 그의 시집에 어떤 시편들을 싣고 있는지 독자로서는 감을 잡을 수 없을 테다. 그리고 그것이 시인이 노리는 바일 테다. “독자들이여.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보지 마라.” “독자들이여, 시인의 약력도 시인의 말도 사족이고 췌사이니 오롯이 시집을 읽어라.” 껍데기 대신 알맹이로 승부하겠다는 얘기일 테다. 그리고 마침내 시집을 통독한 후라면 그가 매우 뛰어난 서정시인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작가이자 문예평론가 김미옥은 최보기와 그의 시집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작가 최보기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산문형 인간’으로 알았다. 그가 우리에게 내어준 서평과 수필과 소설이 그러했다. 간결하면서 동시에 만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그의 시詩가 걸어왔다.”

“한 인간의 생애를 시로 함축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피는 것보다/ 지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철벽같은 바닥으로/ 온몸 내던지는’ 동백이 피고, ‘젊은 아내를 쫓아/ 대문까지 기어 온 바다’가 있는 섬, 거금도에서 태어나 유목민처럼 육지를 생존한 그의 삶은 시詩였다.”

“꽃과 바다와 인연을 사랑하는 이에게 거친 세상은 고달팠을 것이다. 몸피를 부풀리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그는 호기롭게 직설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가 인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침묵했던 말은 사랑이었다고. 시詩를 삼키고 시인을 숨기던 그가 항복하듯 정체성을 드러내었다.”

“시詩의 행간마다 젖은 사랑이 묻어난다. 사랑이 웅변되는 세상에 그의 침묵은 사랑이었다. 유년의 아픈 기억마저 회한이 아닌 사랑으로 다가온다. 사랑을 말하지 않고 사랑을 말하는 그의 시詩는 홀홀하다.”

“그의 시詩가 도시로 바다를 불러왔다. 동백이 거리로 낙하하고 능소화가 빌딩을 타고 오르며 도심의 소음이 파도 소리에 묻히던 어느 마술 같던 퇴근길, 최보기의 시집을 읽는 저녁이었다. 시인이 우리에게 걸어왔다.”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정훈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최보기 시집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에 실린 짧은 시편들을 들여다보면, 시인의 마음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자신을 위장하거나 치장하지 않고 직대(直對)하면서 꼿꼿한 심성의 결을 매만질 수 있다. 대개 이런 시들을 읽으면 독자들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서늘한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한 남자의 결기가 느껴져 잠시 주춤거리기 때문이다. 이건 윤리적 자기 점검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의지와 의식마저 타인이나 공동체의 방향에 손쉽게 의탁하기 십상인 요즘, 이러한 단독자의 날선 의지를 만나는 일이 여간 반갑지 않다. 이런 의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실존적 자기 고뇌에서 비롯한다. 숱한 고민과 방황 속에서 체득한 마음의 심지로 말미암아 생겨난 삶의 태도이다. 여기서 최보기의 시들은 한 편 한 편 나름의 의미와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왜 사느냐는 물음, 혹은 어느 방향으로 삶의 가치를 설정해야 하느냐는 물음은 인간이 끝내 풀고 싶어도 풀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 사태의 와중에 시인은 그래도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했으며, 애써 찾은 길이 힘들고 험해도 결코 놓치지 않고 제 것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이것은 시 쓰기가 주는 외로운 실천이기도 하고, 삶의 방법에 몰두하는 실존적인 자아의 지난한 탐색이기도 하다. 직설하는 시 쓰기의 고독한 감행만큼 허망한 삶의 여백에 성긴 길을 만들어 묵묵히 걷는 자의 독백이 이번 최보기 시집이 보여주는 의미이다.”


칼이 빠진 바람 불어 산책하기 좋은 봄날 저녁 공원의 벤치에서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생각한다. 그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알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네가 아는 것은 너의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떠났다. 지금 개부치 씨는 어디에 있는가? 그를 만나야겠다. 눈썹달만이 어둡고 긴 문장 끝에 마침표로 달려 있어 개부치 씨에게로 가는 길을 모르겠다. 다시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기다린다. 봄여름가을겨울 다시 봄여름가을겨울 그 후로도 몇 개의 봄을 더 지나왔지만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는 아직 오지 않는다.
―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 전문


이번 시집을 편집한 박제영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가장 난해하면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꼽으며 이렇게 얘기한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부터 기다렸는지도 모르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무작정 기다리듯이 최보기 형은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기다렸다. 최보기 형은 아쉬울 것 없는 선전선동 전문가이고, 북칼럼니스트이고, 소설가였지만 언제부턴가 오매불망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기다렸다. 그런 형이 보기에 안쓰러웠다.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는 이제 그만 기다리라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처럼 우리는 함께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기다리기로 했다.”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를 빼면, 이번 시집의 시편들은 어느 하나 읽기에 무리가 없다. 그가 자신의 시 쓰기 전략으로 비유와 상징이라는 곡설(曲說) 대신 일상의 언어를 차용한 직설(直說)을 택한 까닭이다. 직설이 지닌 단점은 행간의 여백이 작아 독자의 상상력이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최보기 시인은 이런 단점을 절묘하게 피하면서 울림과 떨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최보기 시가 지닌 독특한 매력일 텐데, 다음 번 시집은 또 어떤 전략으로 어떤 시편들을 펼쳐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한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