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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냐고 묻고 그립다고 대답했다 저자 : 이능표
시로 빚은 드라마이거나 드라마로 빚은 시이거나 ― 이능표 시집 『사랑하냐고 묻고 그립다고 대답했다』 198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이능표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사랑하냐고 묻고 그립다고 대답했다』가 달아실시선 76번으로 나왔다. 이능표 시인은 첫 시집 『이상한 나라』(1988년)을 내고 2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슬픈 암살』(2015)을 펴냈고, 두 번째 시집 이후 만 9년 만에 이번 세 번째 시집을 펴냈다. 등단 40년의 시력(詩歷)에 그동안 단 세 권의 시집을 펴낼 정도로 과작(寡作)이지만, 그만큼 그의 시는 밀도가 높고 그의 시 세계는 범주를 정하기 어려울 만큼 간단치 않다. 그의 초기 시를 두고 시인 신경림은, “흔히 어떤 시를 가리켜 쏙 빠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능표의 시들은 거의가 이런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는 시들이다. 아마 지용에게서 많이 배운 것 같지만 날씬하기는 그 윗길 간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구성이 완벽하면서도 노래적 성격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장점” 이라고 평했다. 故 오규원 시인은 그의 첫 시집 해설에서, “이능표의 시는 어느 쪽이냐 하면 사실적이라기보다 암시적이다. 이는 그가 심리적 삶에 보다 충실한 유형의 시인임을 말해준다. 이 암시적인 세계의 심리적 정황을 엿보게 해주는 이미지群 가운데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물이다. 그 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눈(雪)인데, 그 눈은 바깥의 세계에 떨어지거나 날리는 것과 시인의 내부로부터 날아오르는 것이라는 두 종류가 있으며, 둘 모두 부정적 이미지의 응고된 물이라는 특성이 있다. (중략) 우리는 통상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토담 밑’이나 ‘바닥’이나 ‘밑바닥’은 따뜻하다. 그는 그 따뜻함에 ‘배’를 깔고 누워 기다리거나 노래한다. 그러므로 그의 노래는 주검처럼 하늘을 보고 있는 자세의 그것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자의 그 따뜻함이 스민 노래” 라고 적었다. 또,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그의 첫 시집을 “침묵에 둘러싸인 시적 언어”로 요약하며, “이능표의 시들이 보여주는 신선한 비유와 짧고 간결한 문체적 특질은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그의 시는 서정시의 재래적인 방법론과 심미적 가치들이 감수성의 쇄신을 통해 아직도 우리 시대에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의 시들이 그 간결한 구조와 정신적 동력의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삶의 현실성에 멀어지지 않는 감각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험의 여러 조각을 지각의 특수화라는 방식으로 재배열해 놓은 시, 짧은 호흡 속에 독특한 인상을 창조하도록 응축된 시, 그리하여 침묵의 아름다움에 둘러싸인 시, 그의 시는 참으로 시적이다.” 라고 평했다. 다양한 평가가 이어졌던 첫 시집 이후 2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슬픈 암살』이 나왔을 때 평론가 우찬제는 “시적 간지럼과 망명시인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통해 이렇게 얘기했다. “이능표 시인이 돌아왔다. (중략) 그가 비록 오랜 시간 동안 시를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서정시인이었음을, 예민한 시혼으로 고단한 현실의 바다에 깊은 그물을 드리웠던 시인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추론하게 된다. 오로지 시인으로서 세월을 견디어오면서 그는 자기 시의 세계를 더 넓고 깊게 천착해온 것으로 보인다. 시적 대상도 다양해졌고,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도 깊어졌다. 어조와 스타일도 다채롭다. 특히 침묵의 여백에서 심원한 이야기성을 구축하려 한 시도가 참으로 어지간하다. ‘심리적 삶에 보다 충실한 유형의 시인’에서 일상적 경험과 생활을 재발견하고, 역사적이거나 문화적인 삶의 지혜를 통해 동시대를 재성찰하는 확산의 깊이를 도모한다. ‘그리움이 없는 나라’에서 철저히 절망하면서 그리움의 정조를 역설적으로 구성한다. 삶의 진실에 대한 그리움, 정녕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 시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월을 벼리고, 시적 연금술을 벼리며, 그렇게 20여 년을 견디어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시의 바깥을 돌고 돌아와, 바깥의 세월을 견디고 견디어 마침내 시의 자리, 시의 본연으로 돌아온 이능표 시인이 등단 40년 만에 세 번째 집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시인 황인숙은 이번 세 번째 시집 『사랑하냐고 묻고 그립다고 대답했다』를 한마디로 “목숨 받은 존재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마음”이라 요약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자기와 영 다른 사람, 영 다른 삶을 꿰뚫어 보고 품는 재량은 시인 이능표의 미덕 중 하나다. 황동규 선생이 쓴 김종삼 선생 시집 해설에 담긴 인상 깊은 구절이 생각난다. ‘김종삼은 시에 대한 욕심보다 사랑이 큰 시인이다.’ 내가 아는 이능표 시인도 그렇다.” “이 시집의 키워드는 사람, 삶, 전쟁, 죽음, 그리고 사랑이다. 사람과 삶은 어원이 같다. 사람에 대한 시들은 곧 삶에 대한 시들이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그들의 이런저런 삶. 이능표 시인은 삶이라는 거리의 사진사다. 그 사진사는 약자, 패자, 소위 ‘투명인간’으로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 비참한 사람, 외로운 사람들을 포착해서 찰칵찰칵 찍는다.” “삶의 기본값은 신산함이다. 불행, 불우, 신산함이 도처에 넘쳐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하고 피한다. 당최 인기가 없어서 얼른 채널을 돌리고 잊어버린다. 시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삶이 신산할수록 그걸 기적처럼 살아낸 사람은 얼마나 장하고 귀한가. 시인은 그들 하나하나에게 그들 자신이 주인공인 삶의 서사를 찾아주고 짚어준다. 한 편 한 편 서사마다 희미한 음악 소리가 흐르는 듯한데, 그것은 세상을 두루 비추는 시인의 햇살 같은 시선의 정조일 테다. 그리고 서사를 시이게 하는 시인의 언어 조탁 역량의 효과일 테다. 이능표는 시 쓰기의 고수다. 청순한 고수.” 파미르고원이었지 아마? 언덕을 오르는 기다란 행렬 속에서 비틀비틀 무리를 빠져나와 너는 내게로 왔어. 다리를 접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노을이 담긴 눈으로 무리를 돌아보던 너의 죽음이 산 자의 깨달음이 되고 있을 때 나도 한 번은 죽었던 거야. 망원경 속에 어둠이 내리고 초원의 바람이 너의 온기를 실어 나르는 동안 겁 많은 여우가 맴돌다 가고 떠나간 무리 속에서 너의 아이가 돌아와 애도를 마칠 때까지 내 숨은 멎어 있었어. 파미르고원의 이름 모를 평원에 뼈를 묻으면서 한 사내의 생사가 되었던 자, 너에 관한 시를 쓰는 일이 살아 있는 흉내를 내는 건지도 몰라. 오래전 그곳에서 죽은 자에게 삶을 가르친 모종의 존재, 그저 양이라 부를 수 없는, 그날 그 파미르고원의 마르코폴로. ― 「죽은 양을 위한 헌사」 전문 “아름답다! 평원의 삶인들 순탄하지 않겠지만, 인간 근처에 사는 동물들은 그 삶처럼 험하게 죽음을 맞기 일쑤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시인이 그 모든 험한 죽음을 애도하고 떠나보내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래, 그래.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내가 곁에 있어. 내가 기억할게. 내가 전해줄게. 커다랗게 떠 있는, 빛이 사라지는 눈을 감겨주면서.” 그리고 이번 시집의 편집자인 박제영은 이렇게 결한다. “이능표의 시집은 드라마로 가득하다. 한 편의 시마다 한 편의 드라마가 들어 있거나, 옴니버스로 펼쳐진다. 그의 시집을 읽다 보면 케이비에스 드라마을 보는 듯하고 엠비시 드라마 <베스트셀러극장>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장르도 다양하다. 가족, 역사, 멜로, 치정, 수사, 시사, 휴먼, 로맨스, 코미디를 망라한다. 그는 드라마의 작가이자 감독이고 때로는 배우로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혹은 소품마저도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곡절과 서사를 지녔으며 그 곡절과 서사에는 시적인 떨림을 내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시집은 시로 빚은 드라마이거나 드라마로 빚은 시라는 얘기다. 시적인 떨림과 극적인 울림이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다.” 요즘 시집은 재미없다고들 말한다. 요즘 시집은 감동이 없다고들 말한다. 이 시집은 그 둘 모두를 반하는 것이니, 시 읽기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원하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 저자 : 고형렬
먼 나라의 시인들과 소통하는 작은 걱정의 시 ― 고형렬 시인의 무크 엔솔러지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 고형렬 시인이 한국,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6개국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른한 명의 시인과 관북 시인―함형수, 김기림, 이용악, 윤동주, 설정식―을 한 자리에 묶은 무크 엔솔러지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달아실 刊)를 펴냈다. -
소양로 기와집골 저자 : 이수환 외
사라진 공간, 사라질 공간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 ― 6인 산문집 『소양로 기와집골』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섯 명의 사진작가―김하정, 박인호, 이수환, 하종범, 함영식, 홍원기―가 합동 사진집 『소양로 기와집골』(달아실 刊)을 펴냈다. 소양로 기와집골이라는 동네의 골목골목을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소양로 기와집골은 한때 춘천의 부촌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재개발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네다. 2008년 도시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었고, 이후 재개발에 대한 논란 속에 2021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소양로 기와집골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최고 26층 11개동 1,039가구의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집의 서두에서 참여 작가들은 이번 사진집에 관하여 이렇게 얘기한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적, 사회적 자산들이 현대식 건물로 대체되는 것은 언제부턴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한때 우리가 살았던 생생한 삶의 자취들이 사라지고 기록도 사라지면 마침내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질 것이다. 이 책에 기록된 사진들이 향후의 세대에 전해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계기라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국 방방곡곡이 아파트단지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전국 어디를 가도 거기가 거기다. 지역만의 고유한 모습은 사라지고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바벨탑 같은 마천루들이 대등소이 펼쳐질 뿐이다.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인 세상이다. 그렇게 서로 달라서 좋았던 한 세상이 지워지고 있다. 언젠가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정말로 각양각색의 마을이 있었던가요? 어쩌면 사진집 『소양로 기와집골』이 말하고 싶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기록에 남기니 꼭 기억해두라고. 우리가 왔던 그곳으로 어쩌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테니. 지나온 그 공간, 그 길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말이다.